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면 콜레스테롤 항목에 먼저 눈이 갑니다.
LDL 콜레스테롤 옆에 붉은 화살표가 하나 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아래 HDL 콜레스테롤은 오히려 넉넉하게 높습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좋은 콜레스테롤이 높으니까, 나쁜 콜레스테롤이 조금 높아도 서로 상쇄되는 것 아닐까?”
많은 분들이 이 지점에서 안심하고 결과지를 서랍에 넣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안심이 어디까지 타당한지를 하나씩 확인해보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HDL이 혈관에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검진 결과지에 찍힌 HDL 숫자가 그 좋은 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까지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von Eckardstein et al., 2023; Ouyang et al., 2025). 이 둘의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HDL이 ‘좋은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이유
HDL을 깎아내리려는 글이 아닙니다. HDL이 혈관에서 실제로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이해하려면 죽상 동맥경화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혈액 속 LDL은 콜레스테롤을 싣고 다니는 지단백 입자입니다. LDL을 비롯한 ApoB 함유 입자가 혈관 안쪽 벽으로 들어가 그곳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죽상동맥경화가 시작됩니다 (그림1).

혈관벽에 머문 LDL 입자는 산화·응집 같은 변화를 겪으면서 염증을 일으킵니다. 혈액 속 단핵구가 혈관벽으로 들어와 대식세포가 되고, 대식세포가 변형된 LDL 입자를 계속 받아들이면 그 안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거품세포(foam cell)가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질과 염증세포, 죽은 세포, 평활근세포와 결합조직 등이 쌓여 죽상동맥경화 플라크가 만들어지고 자라게 됩니다 (Ference et al., 2017; Borén et al., 2020).
HDL은 여기서 청소부 역할을 합니다. 대식세포에 쌓여 있는 콜레스테롤을 넘겨받아 혈액으로 빼내고, 최종적으로 간으로 운반하여 처리하도록 돕습니다. 이것이 ‘역콜레스테롤 수송(reverse cholesterol transport)‘의 중요한 과정입니다.
HDL은 이외에도 LDL의 산화를 억제하고, 염증 반응을 조절하며 혈관 내피 기능을 유지하는 데 관여합니다 (von Eckardstein et al., 2023). 그러니 ‘좋은 콜레스테롤’이라는 별명은 근거 없이 붙은 것이 아닙니다.
한 줄 정리: HDL이 혈관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 자체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검진에서 재는 HDL 수치는 그 ‘일솜씨’가 아닙니다
여기서 이 글의 핵심이 나옵니다.
검진 결과지의 HDL 수치, 즉 HDL-C는 HDL 입자 안에 들어있는 콜레스테롤의 양을 측정한 값입니다. HDL이 콜레스테롤을 얼마나 잘 회수하는지를 측정한 값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느 청소 회사의 실력을 알고 싶은데, 우리가 가진 정보라고는 그 회사 트럭에 실려 있는 회수물의 양뿐인 셈입니다. 양이 많다고 청소를 잘한다는 뜻은 아니고, 적다고 못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실제로 이 차이를 확인한 연구가 있습니다.
심혈관질환이 없던 성인 약 2,900명을 9년 넘게 추적했더니, HDL이 세포에서 콜레스테롤을 실제로 빼내는 능력, 즉 콜레스테롤 유출능(cholesterol efflux capacity)이 높은 사람에서 심혈관질환이 더 적게 발생하였습니다. 반면 HDL 수치 그 자체는 여러 위험요인을 고려한 뒤에는 사건 발생과 뚜렷한 관련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Rohatgi et al., 2014).
적어도 이 연구에서는 HDL-C라는 숫자보다 HDL의 실제 콜레스테롤 회수 능력이 이후 질환 위험을 더 잘 보여주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HDL은 모두 똑같은 입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크기와 밀도도 다르고 포함하는 단백질과 지질의 구성도 다양해 실제 기능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노화, 당뇨병, 만성콩팥병, 만성 염증과 산화스트레스, 흡연 등의 환경에서는 HDL의 구성과 기능이 변하면서 콜레스테롤 회수나 항산화 기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HDL을 ‘기능장애 HDL(dysfunctional HDL)’이라고 합니다 (von Eckardstein et al., 2023; Ouyang et al., 2025). 즉 HDL-C가 비슷한 두 사람이라도 실제 HDL의 혈관 보호 기능은 다를 수 있습니다. (BOX 1)
이 이야기는 절반만 맞습니다.
음주 후 HDL-C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관찰됐습니다.
통제된 음주 연구에서는 HDL-C와 주요 HDL 단백질이 증가했고 (De Oliveira e Silva et al., 2000), 대규모 관찰연구에서는 과음하는 사람에게서 매우 높은 HDL-C가 더 흔하게 나타났습니다 (Enriquez-Martinez et al., 2023).
문제는 앞에서 본 그대로입니다. HDL-C 수치가 올라간 것과 HDL의 기능이 좋아진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10년 이상 음주해온 한국 중년 여성을 조사한 소규모 연구에서는 LDL의 산화를 막는 데 관여하는 HDL에 결합된 paraoxonase 효소의 활성이 감소하고, HDL의 산화·당화와 지질 구성이 변하는 등 혈관 보호 기능이 떨어질 수 있는 변화가 관찰됐습니다(Cho et al., 2022). 참가자가 많지 않은 연구라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술로 HDL-C가 올랐으니 혈관에 좋은 것이다”라고 단정할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음주는 HDL과 별개로 심혈관 위험에 영향을 줍니다. 유전적 분석을 이용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음주량이 증가할수록 고혈압과 관상동맥질환 위험도 증가했습니다 (Biddinger et al., 2022).
정리하면, 술 덕분에 올라간 HDL-C는 음주의 심혈관질환 위험을 상쇄해주는 적립금이 아닙니다.
그럼 약으로 HDL-C를 올리면 어떨까요?
HDL이 낮은 사람에게 심혈관질환이 많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발상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약으로 HDL-C를 올리면 심근경색과 뇌졸중도 줄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 임상시험의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① 니아신 (niacin)
AIM-HIGH 연구에서는 이미 스타틴으로 LDL-C를 잘 조절하고 있던 심혈관질환 환자에게 니아신을 추가했습니다.
니아신 치료군에서 HDL-C는 약 35 mg/dL에서 42 mg/dL로 증가했지만 주요 심혈관 사건은 추가로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Boden et al., 2011).
이후 2만 5천 명이 넘는 고위험 환자를 대상으로 한 HPS2-THRIVE 연구에서도 니아신을 추가한다고 주요 심혈관 사건이 줄지 않았고 일부 심각한 부작용은 증가했습니다 (HPS2-THRIVE Collaborative Group, 2014).
② 약이 아니라 타고난 유전적 조건으로 확인해봐도
태어날 때부터 HDL-C를 높이는 유전 변이를 가진 사람들을 분석한 연구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HDL-C가 유전적으로 높다고 해서 심근경색 위험이 낮아지는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Voight et al., 2012).
유전적 차이는 오랜 시간 지속되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는 HDL-C 자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③ HDL을 크게 올리는 신약들
HDL-C를 크게 높이는 약들도 개발됐습니다.
최근 연구된 오비세트라핍(obicetrapib)은 HDL-C를 크게 올리는 동시에 LDL-C를 약 30% 낮추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Nicholls et al., 2025).
BROADWAY 연구에서 LDL-C 감소 효과는 확인됐지만, 이 결과만으로 HDL-C를 올린 것이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를 만든다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하나 있습니다.
낮은 HDL-C는 ‘위험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호의 숫자만 인위적으로 바꾼다고 위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HDL-C가 낮은 사람은 중성지방 상승이나 인슐린저항성, 대사 이상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은 HDL-C를 자동차의 계기판 눈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기판의 경고 바늘을 손으로 밀어 정상 위치로 옮긴다고 엔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HDL은 높을수록 좋은 걸까요?
대규모 관찰연구에서 HDL과 사망 위험의 관계는 계속 내려가는 직선이 아니라 U자 또는 J자형으로 나타났습니다.
HDL-C가 낮은 사람에서 위험이 높았지만, 극단적으로 높은 HDL-C를 가진 사람에서도 사망률이 다시 높아지는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덴마크의 대규모 코호트 연구와 심혈관 고위험군 연구에서 모두 보고된 결과입니다 (Madsen et al., 2017; Liu et al., 2022).
그렇다고 “HDL-C가 높아서 사망 위험이 증가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매우 높은 HDL-C를 만드는 유전적 특성이나 과음, 간질환, 대사 상태 등 다른 요인들이 함께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찰연구에서 함께 나타난 현상과 인과관계는 구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HDL-C가 높다는 사실은 높은 LDL-C의 위험을 없애주는 보험 증서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봐야 할까요 — 죽상동맥경화를 일으키는 핵심 입자
지금까지는 HDL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반대편을 보겠습니다.
LDL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심혈관질환과 통계적으로 같이 나타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LDL을 비롯한 ApoB 함유 지단백 입자가 혈관벽 안으로 들어가 머물면서 죽상동맥경화를 시작하고 진행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오래 추적한 역학연구, 태어날 때부터 LDL이 다른 사람들을 비교한 유전연구, 그리고 약물로 LDL-C를 실제 낮춰본 무작위 임상시험이라는 서로 다른 종류의 연구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Ference et al., 2017; Borén et al., 2020).
정확히 말하면 범인은 LDL 하나가 아닙니다.
LDL, VLDL 잔여입자, IDL, Lp(a) 등의 죽상경화성 지단백 입자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각 입자마다 ApoB라는 단백질이 하나씩 존재합니다. 그래서 혈중 ApoB는 혈액 속을 돌아다니는 주요 죽상경화성 지단백 입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Ference et al., 2017; Sniderman et al., 2024).
여기서 유용한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실려 있는 화물의 총량’이라면, ApoB는 ‘화물을 싣고 다니는 차량의 수’입니다.
혈관벽 안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는 것은 콜레스테롤이라는 화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싣고 다니는 ApoB 지단백 입자입니다.
따라서 같은 양의 콜레스테롤이라도 입자 수가 많으면 혈관벽으로 들어가 머물 기회도 많아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서는 LDL-C와 ApoB가 비슷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중성지방이 높거나 당뇨병·인슐린저항성·대사증후군이 있는 경우에는 각 LDL 입자에 들어 있는 콜레스테롤 양은 적으면서 LDL 입자 (ApoB 입자) 수는 많은 상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경우 LDL-C가 높지 않아 보여도 ApoB는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고, LDL-C만 보았을 때보다 위험을 더 높게 평가해야 할 수 있습니다 (Sniderman et al., 2024).
이 이야기는 2편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LDL 수치 및 입자 수에 더하여 노출 시간이 중요하다
동맥경화 위험을 결정하는 것은 오늘의 LDL 수치 하나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입자에, 얼마나 오랫동안 노출됐는가입니다. 이것을 누적 노출이라고 합니다 (Ference et al., 2017; Mach et al., 2020).
죽상동맥경화 위험은 오늘의 LDL-C 수치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ApoB 함유 입자에 얼마나 오랫동안 노출됐는가입니다 (그림2).
이것을 ‘누적 노출(cumulative exposure)’이라고 합니다 (Ference et al., 2017; Mach et al., 2020).
예를 들어 35세에 LDL-C가 150 mg/dL인 사람이 다른 위험인자가 거의 없다면 앞으로 10년간의 심혈관 위험은 낮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검진 상담에서 “지금 당장 약을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이 곧 LDL-C 150 mg/dL이 평생 안전한 수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상태가 20년, 30년 이어지면 혈관벽은 그 기간 내내 ApoB 함유 지단백 입자에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혈관이 받는 누적 노출은 ‘수치(농도) ×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림2). 위험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세월 동안 조용히 적립됩니다 (Mach et al., 2020).

2026년 ACC/AHA 이상지질혈증 지침이 10년 위험뿐 아니라 30년 위험까지 함께 고려하도록 바꾼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젊은 사람은 10년만 놓고 보면 거의 모두 안전 범위에 들어오지만, 남은 평생을 놓고 보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Blumenthal et al., 2026). 따라서 LDL 콜레스테롤은 젊을 때부터 관리해야됩니다.
1편을 정리하면
HDL은 실제로 혈관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지만, HDL-C 수치가 그 기능을 직접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높은 HDL-C가 높은 LDL-C의 위험을 상쇄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죽상동맥경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LDL을 포함한 ApoB 함유 지단백 입자에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랫동안 노출되는가입니다. 따라서 HDL-C가 높다는 이유로 높은 LDL-C를 그대로 두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젊을 때부터 높은 LDL-C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내 LDL-C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어디까지 낮춰야 할까요?
너무 낮으면 오히려 위험하다는 말은 사실일까요?
검진에서 잘 측정하지 않는 ApoB나 Lp(a)는 언제 확인해야 할까요?
2편 「내 LDL은 어디까지 낮춰야 할까?」에서 이어가겠습니다.
📚 참고문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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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를 위한 것이며, 전문 의료 상담이나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전체 면책 조항 보기